화제의 인물: 시부야 구의회 선거 당선자 하시모토 유키
페이지 정보
본문
이번 2019년 4월 일본 지방선거에서 가장 화제가 된 선거 포스터는 시부야에서 나왔다.
누가 봐도 AV 커버를 연상케 하는 디자인에 오른쪽 상단에 '신인'이라고 쓰여 있는 게 키 포인트.
실제 AV 표지 디자이너인 '사키' 씨
(@Sakippo_XO)도
"왠지 모르게 기시감이 드는 포스터"라고 한 마디 했을 정도였다.
※ 기시감: 처음 봤지만 언제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느낌
포스터의 주인공은 금년도 시부야 구의원 선거 후보 '하시모토 유키'(
橋本ゆき) 였다.
'가멘 조시'라는 지하 아이돌 출신에
도쿄대 문학부 심리학과를 졸업했다는
다소 독특한 이력으로
출마 전에도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던 인물이다.
그리고 4월 22일 오전 1시,
당선 확정!!
이번 지방선거 최연소 당선자였다.
아무런 정치적.지역적 기반이 없어 '승산 제로'라는 예상을 뒤엎은 결과였다.
55명의 출마자 중에서 34명이 당선되는 선거이긴 하지만
시부야 출마자 중 4위(2,376표)라는 높은 득표수를 받았다는 건 충분히 놀랄 만한 일이었다.
본명 '하시모토 유키'(橋本侑樹),
아이돌 활동명은 '사쿠라 유키'(桜雪).
1992년 12월 12일 미에현 츠시에서 태어났다.
중학생 시절 합창 콩쿠르 전국 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한 걸 계기로
고등학교에 갓 진학한 2008년 NHK 도쿄 아동 합창단에 입단했다.
출신 고등학교 편자치가 77인데 이 정도면 일본 전역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명문.
2010년에는 탤런트로 데뷔했고 TV 출연과 학업을 병행하면서
2012년 도쿄대에 합격했다(1년 재수했음).
원래 머리가 명석한 학생이긴 했지만,
어찌됐든 연예활동을 병행하면서 도쿄대를 간 것은 대단한 노력파가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일이다.
※ <지하 아이돌이 1년만에 도쿄대생 될 수 있었다! 합격의 기술>이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대학 합격 직후 소속사 '앨리스 프로젝트'에서 지하 아이돌로의 전직을 권유했고,
동경대 아이돌이라는 타이틀로 'OZ', '스팀걸즈', '앨리스 주반' 등 다양한 걸그룹의 멤버로 활약했다.
특히 2013년부터 활동한 프로젝트성 유닛 '가멘 조시'(仮面女子)로 이름을 널리 알렸다.
2016년 도쿄대 졸업논문 주제는 <
아이돌 팬의 심리 연구> ㄷㄷㄷ;;
(가멘조시가 콜라보한 '여자 발바닥맛 치킨')
(2016년 <마스캇토 나이트>에서 아스카 키라라의 츳코미에 웃음이 터진 하시모토 유키.
가멘조시는 에비스 마스캇츠와 대결 형식의 합동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가멘 조시는 아무래도 지하 아이돌이다 보니 언더그라운드 이미지가 강하긴 하지만,
지하 아이돌치고는 꽤나 인기가 높은 그룹이었다.
2015년 인디 여성 아티스트로는 최초로 오리콘 주간 차트 1위에 올랐고,
오사카에 전용 극장을 두고 있으며, 연간 라이브 횟수 1천회, 페이스 팔로워 천만 이상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하시모토 유키는 어떻게 해서 정치에 뛰어들 생각을 하게 됐을까?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2016년 일본 선거법 개정이었다.
선거연령이 만 20세에서 18세로 하향되면서
"새로운 젊은 유권자들이 다가오는 참의원 선거에 얼마나 참여할지"가 이슈로 떠올랐다.
선거 연령 변경 이후에 하시모토 유키에게 정치적인 의견을 묻는 인터뷰도 자주 들어왔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자신이 스스로 의견을 밝힌다면 정치가 꽤 친근하게 다가올 것"이라고 생각하게 됐고,
어린 친구들이 자신의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도록 독려하기
로 마음을 먹었다.
아키바 가멘(秋葉仮面)이라는 새로운 프로젝트성 걸그룹을 발족해
걸그룹 활동을 하는 동시에 팬들에게 정치에 관심을 갖고 선거에 참여하길 호소했다.
아키바 가멘의 데뷔곡은 <선거에 가자!(選挙行こうぜ!)>
(아키바 가멘 활동 당시의 하시모토 유키 - 왼쪽에서 두 번째)
사람들에게 정치에 관심을 갖자고 말하는 입장에 있다보니
자신의 발언에 책임을 갖기 위해 정치를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에 이르렀고,
당시 도쿄 도지사 '고이케 유리코'가 운영하던 정치인 양성소 '희망의 학원'(希望の塾)에서 정치를 배우게 됐다.
※고이케 유리코는 차기 일본 총리 감으로 물망에 올랐던 여성 정치인. 자유주의 개혁 성향의 중도우파 정치인이긴 하지만 대외적으로는 강경파이기 때문에 이 지점에서 하시모토 유키도 혹시... 하는 우려가 있긴 하다. 내가 아는 선상에선 아직까진 하시모토 본인이 민감한 역사 문제에 대해서 문제될 만한 발언을 한 적은 없다. 한국에 대한 언급이라곤 "한국음식 맛있어서 집에서 자주 해먹는다" 정도?
이후로 하시모토 유키는 TV나 라디오에서 젊은층을 대변하여 정치적 목소리를 내곤 했다.
아베노믹스에 대해 "대기업에 대한 특혜가 중소기업에 대한 낙수효과로 이어질지는 의문이지만 응원합니다"라며
은근슬쩍 현 정부를 돌려까기를 하는 등 소신 발언도 더러 있었다.
2018년 1월에는 희망의 학원에서 나와 'OPEN'이라는 새로운 정치학원으로 들어갔다.
이 'OPEN'이라는 곳은 고이케 유리코의 밀실정치에 반대한
오토키타 슌
(
音喜多駿) 도의원이 주도해서 세운 곳으로서,
아마도 하시모토 유키도 이때 고이케 유리코와 결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던 2018년 4월 11일, 같은 걸그룹 후배
이가리 토모카(猪狩ともか)가
강풍에 쓰러진 나무 안내판에 깔려 허리뼈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하반신이 마비돼 평생 휠체어에 의지하게 됐지만,
낙담하지 않고 '가멘 조시'에 휠체어를 끌고 복귀했다.
2020년 도쿄 패럴림픽에 출전하는 것을 목표로 연예 활동을 이어나갈 예정이라고 한다.
이가리 토모카가 겪은 불의의 사고는 하시모토 유키에게 심적인 충격을 가져다줬다.
"소중한 사람이 고통받고 있는데 아무런 힘이 돼 줄 수 없는 것이 고통스러웠"으며,
"열심히 재활훈련을 해 그룹에 복귀하는 모습을 보고 자신의 인생을 다시 돌아보게 됐다고 한다.
"누군가에게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
"토모카가 그랬던 것처럼 누구나 포기하지 않고 장벽을 극복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
"누구나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정치인이 되어 시민에게 다가가 귀를 기울이고 싶다"는 생각,
이러한 여러 생각들이 하시모토 유키를 정치인이 되도록 결심케 했다(2018년 6월경).
(일본 최대의 성인 사이트 DMM의 창립자 '카메야마 케이지'와 하시모토 유키의 대담)
2018년 9월 19일에 하시모토 유키가 출간한 <일본행복전략>(ニッポン幸福戦略)은 기업인, 학자 등 사회 각계 인물들을 만나
일본을 행복하게 만드는 방법에 대해서 의견을 나눈 대담집이었다.
2018년 12월 22일 26번째 생일을 맞이해 아이돌 졸업과 정계 진출을 공개선언했다.
그 다음날
아타라시이당(
あたらしい党)의 공천을 받아
시부야 구의원 후보로 출마했다.
아타라시이당은
오토키타 슌(
音喜多駿) 도의원이 세운 신설정당이다.
정치학원 'OPEN"에서의 연줄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하시모토 유키는 현직 시부야 구의회에 2,30대 청년이 없어 "젊은 세대와 여성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곤,
시민의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해야 하며 그래야 정치가 새로워진다고 역설했다.
제1공약은 '교육'이었다.
민관 연계로 영어/첨단 교육을 향상시키고 평생 학습 지원을 실시할 것이라고 했다.
제2공약은 '클린시티'.
치안과 주거환경을 개선하고 쓰레기 투기 제로의 거리를 목표로 했다.
제3공약은 '복지 향상'.
불임치료 지원 및 임부의 생활 지원, 육아프로그램 향상, 장애인 시설 증가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제4공약은 '행정 비용 최소화'.
사무작업을 위한 인적.경제적 비용을 최소화할 것을 약속했다.
...
팬들과 대학친구들을 이끌고 무작정 뛰어든 선거였다.
신설정당에 정치신인인 데다가 아무런 정치적.지역적 기반도 없었지만
하시모토 유키는 젊은 유권자의 표심을 흔들어놓는 데 성공했다.
아마도 그동안 하시모토 유키가 세상을 바꾸고자 했던 노력들이 젊은 사람들에게 진실되게 다가왔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물론 이제 갓 스타트를 끊은 초짜 정치인이 앞으로 얼마나 잘 해낼지는 좀더 두고볼 일이지만 말이다.
(선배 정치인들의 헛소리는 배우지 않았기를 바람...)
- 이전글PRESTIGE 2019년 5월 24일 AV 발매 품번 24.05.20
- 다음글키미지마 미오, 스트립의 세계에 복귀 24.0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