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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자와 미나미 소속사 사장이 쓴 아이자와 미나미의 신데렐라 스토리가 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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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113회 작성일 24-05-20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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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FANZA 어덜트 어워즈 최우수여배우상의 '아이자와 미나미'
그녀의 소속사 '포티포그룹'의 사장 J씨가 트윗에 올린 아이자와 미나미의 신데렐라 스토리가 화제입니다.
소규모의 작은 사무실에서 시작해 큰 인기를 끌거란 예상과 달리 미지근한 반응에 결국 일마저 끊키게 되었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 결국 업계 최고가 되었다는 여태까지의 과정과 소회의 글 인데요.
아이자와 미나미의 마음씨나 사장 J씨의 투병이야기들이 아이자와 미나미의 팬들은 물론
다른 AV팬들 사이에서도 감동적이라는 반응입니다.
아래는 J씨가 올린 내용 전문의 번역입니다.

2014년 여름 만18세의 소녀를 스카웃했다. 후에 아이자와 미나미가 되는 소녀다.

스카웃해서 단골 카페에 가서 쓸데없는 이야기로 달아올랐다. 밝은 아이, 밥먹으러 가면 밥도 잘 먹는 아이ㅋ

당시에는 잡지 같은데서 스냅촬영 모델을 하며 서클 활동도 하는 여대생.

14살이나 위인 아저씨에게 즐거움을 주었다.

처음에는 AV같은 건 말도 안된다는 반응을 하던 남자경험이 거의 없었던 순수하고 세상물정 몰랐던 (지금도 세상물정 모르지만ㅋ) 여자아이였다.

참고로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그녀가 다녔던 아가씨들이 다니는 명문여대. 저는 몰랐습니다.ㅋ

서로 여러일이 있어서 좀처럼 만나지 못한 시간이 1년이 되었고 잠시 재회한 그녀는 19살이 되어있었다.

재회한 기념으로 한국요리를 먹으며 울고있는 그녀가 있었다.ㅋ 그 때부터 울보였다. ㅋㅋ

그 해 연말에 “아이디어 포켓이라는 메이커가 있는데 놀러가보지 않을래?”라는 나의 권유에 메이커에 가게 되었다.

가던 도중 그녀는 “나 AV할께”라고... 그 날은 프로듀서와 차만 마시고 일어났고 다음해 2월 다시 면접을 봤다.

2개월 후에도 그녀의 의사는 변하지 않았다.

메이커에서는 대환영을 했고 좋은 조건으로 계약을 맺었다.

3월, 데뷔작 촬영.

첫 촬영 후 내가 뛰어 들어갔더니 그녀는 울었다.

인터뷰에서는 긴장해서 였다고 말했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좋아하지도 않는 남자에게 안기는 일에 충격을 받아 우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2일에 걸친 촬영은 무조건 밤9시에 마쳤다.

당시 친가에서 살았던 그녀는 통금시간이 있었다.

나는 밤 11시 이전까지 무조건 그녀를 집에다 데려다 주었다.

그녀는 당시 지금보다 더 달아올랐던 AV OPEN 2016에서 데뷔를 하게 되었다.

그렇다 그녀는 엘리트였다.

좋은 조건에 촬영은 밤9시까지만, 플레이에도 제한 사항을 많이 넣었다.

데뷔작이 나오기 전에 조건을 더 좋게 갱신해 계약을 연장했다.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팔리지가 않았다. 물론 조건을 낮췄고 그래도 아이디어 포켓에 메달렸지만 몇차례 계약연장을 한 후 계약은 끊켰다.

그래도 키카탄(*낮은 게런티로 여러 메이커에 출연하는 배우)으로 갈 생각은 없었다.

다른 메이커로의 이적도 생각하지 않았다.

처음 열린 이벤트에서도 40명도 오지 않았다.

그 무렵 첫 오프회를 개최했다.

8명 밖에 안왔다.

그녀도 나도 (*주변에) 들키는 게 무서웠다.

들키는 걸 방지하지 위해 활동은 좁게 했고 미디어에도 최대한 나가지 않았다.

그게 원인이 되어 이름이 팔리지 않았다.

트위터도 동기였던 애와 비교해보면 적었다.

그러나 그녀의 친구의 밀고로 부모님에게 들켰다.

5개월이라는 시간동안 일이 없다가 아이디어 포켓에서 다시 촬영하게 되었다.

메이커는 아이자와 미나미를 버리지 않았다.

이 때는 정말 감사했다.

그리고 지금 같이 해서는 안된다고 그녀도 나도 매일 여러모로 고민했다.

메스컴에도 적극적으로 출연했다. 분하지만 노게런티인 일도 했다.

그녀의 무기는 애교라고 생각한다. 가식없이 진짜로 팬들을 좋아했다.

이벤트에선 행사장 밖에서 기다리는 팬들을 항해 정중하게 대응했다.

그것도 마음에서부터 기쁨이 우러나와서였다.

과자를 만들거나 카드를 만들거나 해서 이벤트에 특전을 붙였다.

오프회도 자주 개최했다.

트윗은 하루 1회 이상의 할당량을 채웠고 아이콘 등의 남성의 시선으로 해주는 어드바이스를 그녀는 착실하게 지켜나갔다.

플레이도 하메후키(*시오후키의 일종), 붓카게, 실금 등등 그때까지 절대로 하지 않았던 것들도 열심히 도전했다.

AV이외의 업무제의도 늘었다.

여담이지만 그녀는 잡지사의 그라비아 촬영이 거의 없다.

활동 분야가 좁았던 것도 있지만 그 시절엔 잡지사에 영업을 하러가면 아이자와 미나미는 누군지 모른다고 하거나 너무 빈약하다고 하거나 너무 어리다고 문전박대 당했다.

그 중 유일하게 한 곳에서 받아줬는데 그 회사에 대한 은혜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문전박대 했었던 잡지사들에겐 이후 오퍼가 들어오더라도 아이자와 미나미는 내지 않겠다라는 결정을 했고 그런 이유 때문에 사진집도 없다.

만약 낸다고 하면 일본 제일을 손에 쥔 뒤 그 은혜를 입은 한 회사에서 내려고 생각한다.

나는 그녀에게 은혜를 잊으면 안된다고 항상 말하고 있다.

팬들도 초창기부터 이벤트나 오프회에 나와 응원해주던 맴버들이 있다.

물론 지금은 오프회를 하면 즉시 마감되는 것을 알고 있지만 아이자와 미나미의 원점은 그 초창기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팬들을 차별할 생각은 없고 ‘사장’이라고 가볍게 말을 걸어주는 팬을 만나면 기쁘고 모두가 좋다.

하지만 사람은 괴로울 때 지탱해준 사람에게 특별한 은혜를 느낀다. 나도 그렇다.

지금은 계약도 끊어지지 않고 판매량에서도 인기가 있지만 나도 그녀도 예전의 원점회귀를 잊지 못한다.

그러니까 응원해주는 모든 분들이 너무 좋고 소중하다, 아무리 인기가 많아져도 교만에 빠지지 않고 행사장에서의 대응 같은 것도 계속해나갈 생각이다.

그녀는 엘리트로 데뷔했지만 한번 좌절을 겪었고 벼랑 끝에서 겨우 살아돌아 왔다.

사무실도 신생이고 팔로워도 자신의 힘만으로 늘려가지 않으면 안된다.

이벤트도 지금이야 모집 즉시 마감이지만 예전에는 힘들게 접객활동을 하며 마감시켰다.

지난해 7월엔 내가 급성 골수 백혈병으로 긴급 입원

그녀는 매니저가 붙어 있지 않을때는 전철이나 택시로 혼자서 일하러 가야 했다.

비용에 대한 것 까지 신경을 써주었다.

모처럼 일이 많아졌는데 정말 미안하다.

그녀는 현장에서 평가가 좋으며 어느 업체에서나 사랑받고 있어서 일이 착착 결정된다.

인사도 착실하게 하고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자랑스러운 탈렌트라고 생각한다.

내가 입원하고 7개월 뒤 FANZA 어덜트 어워드에서 제의가 왔다.

둘이서 울면서 통화를 했다.

그리고 메이커에서도 계약연장

조건에 구애받지는 않지만 제시해온 조건은 괜찮았다.

게다가 작품이 잘 팔려 메이커에서 보너스도 나오게 되었다.

단순하게 기뻤다.

그게 아이자와 미나미의 평가이니까 말이다.

어덜트 어워드 투표기간, 처음 겪어보는 일에 뭘 어떻게 해야 모르는 상황에서 나는 다시 입원해버리고 말았다.

병실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한정되어 있었다.

초조했다.

라이벌은 필사적으로 표를 모으고 있었다.

그때 도와준 것은 동료들이었다.

선거활동에서 이기기 위해선 돈이 든다.

하지만 다들 무상으로 일해주었다.

나는 라인에 있는 1000명 이상의 친구들에게 호소를 했다.

그 중에 있는 지지자들이 다시 자신의 라인 친구들에게 호소했다.

거기서 기적이 일어났다.

아이자와 미나미는 인기가 있었다.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과 예능계까지 지지가 퍼져나갔다.

상당수의 사람이 투표를 해주었다.

그녀는 처음엔 노미네이트 된 것 만으로 충분하다고 말했지만 나는 질 싸움이면 처음부터 하지 않는다라는 생각이기 때문에 필승을 내걸었다.

이기고 싶다라는 마음은 모두 같은 마음일 것이고 특히 우수여배우상을 받으신 분은 (익명으로 하겠다ㅋ) 진심이었기 때문에 이쪽도 진심으로 대했다.

솔직히 가장 의식하고 있었다.

싸우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나는 룰 안에서라면 뭐든지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것도 실력이다.

에초에 이벤트에 투표한 사람에게 특전을 준다는 것은 선거였다면 선거법 위반이지 않은가 ㅋ

티슈를 나눠주는 것도 근사한 아이디어였고 위협이었다.

아이자와 미나미의 인기는 업계 안에서도 퍼져있었고 그녀의 동료 여배우들도 협력해줬다. 제작진이나 점포에서도 협력해주었다.

승리할 수 있었던 건 팬들에게 대하는 자세는 물론 여러 방면으로 발휘되는 그녀의 인망이었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실력 이상의 운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시상식 당일, 곳곳에서 응원이 왔고 그녀의 친구들도 동료들을 수십명씩 데려와 투표하고 응원해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미냐의 집(팬클럽) 모두들

실은 나는 2층 자리에서 그녀는 스테이지에서 미냐의 집의 함성소리 크기를 보고 눈치챘다.

그 함성의 크기 때문에 이기겠다. 라는 기분이 들었다.

이름이 불렸을 때 나도 울고 있었다.

아니. 이름이 불리기 전부터 눈물이 나오고 있었다고 생각한다.ㅋ

미냐의 집의 함성을 보고있는것 만으로 눈물이 나왔다.

그리고 행사장 밖에서 우리가 나오는 걸 기다리고 있었던 T씨가 흐느껴 울고 있는 모습은 반칙이었다. ㅋ 다시 한번 울음이 터져나왔다.

미냐의 집의 힘은 위대했다.

정말로 정말로 온 힘을 다한 응원과 감동을 줘서 고마워.

그리고 아이자와 미나미의 신게렐라 스토리는 아직도 계속될 것이다.

엘리트에서 시작했지만 좌절을 맛봤고 괴로워 했던 아이자와 미나미는 이제부터 빛나도 되는 것 아닐까?

라이벌은 데뷔때부터 항상 빛나왔었다.

아이자와 미나미는 진흙탕물을 튀기며 왔기 때문에 헝그리 정신을 알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 빛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일본 제일이라는 직함을 짊어지게 되었기에 책임은 중대하다.

앞으로도 일본 제일이 된 아이자와 미나미를 부디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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